동성결혼

생각 짚어보기1
가끔 저는 생각의 뿌리와 뻗어나가는 줄기가 어느 정도인지 예측이 힘듭니다.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확 바꿀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도통 무슨 생각으로 살아오고 있는지 파악해보고자 하는 실험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슈에 관해 생각해볼 겨를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의 첫 주제는 '동성결혼'입니다. 논쟁을 위한 게 아니라 무심코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편견이나 생각 부스러기를 나누는 자리라는 점^^

 
청년필름의 대표 김조광수씨가 동성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파트너는 19살 차이 나는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합니다. 실은 그 파트너의 나이까지 알고 싶지 않았는데 기사 제목은 '19살 차이'에 많이 주목하네요. 김 대표는 헌법소원도 할 작정이라고 합니다. 


A.


저는 찬성하는 편입니다. 남녀의 구분 이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 여깁니다. '서로가 좋다'는 것 앞에서 무력해지는 게 크다고 할까요. '개인'을 중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개인과 개인이 만났을 때 서로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순간 그 길을 가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차후에 남녀가 '결혼'이라는 정말 중대한 모험(?)에 뛰어드는 것처럼 동성결혼도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이런거 보면 가족, 집단, 사회구성원, 출산율 등 국익과 관련된 점은 좀 덜 생각하는 편입니다. 영화 <Milk>에서의 숀 펜의 연기가 뇌리를 스칩니다. (멋진 블로거들은 영화에 대해 세세한 리뷰도 곁들였겠지만 저는 첫 글치곤 길게 썼다고 여기기에 영화 포스터만..)


(출처: 네이버 영화정보) 

누구를 위하여 블로그를 쓰나 아직은 미정인데


 
안녕하세요. 네모선장입니다. 처음으로 이글루에 집을 짓고 글을 씁니다. 

이미 파워블로거들도 많고, 저는 블로그 관리할 능력도 없고, 블루오션 같은 아이템도 갖지 못합니다. 산발적인 관심사와 얕은 지식으로 앞으로 무엇을 쓸 수 있을까요. 인상비평에 그치는 글은 싫거든요. 이렇게 불특정 다수를 향한 블로그글을 존댓말로 쓰려니 이만큼 어색한 것도 없지만 신선합니다. 새로운 자아를 하나 더 얻은 기분이랄까요. 앞으로 네모선장의 글은 매주 2회는 꼭 올릴 예정입니다.

블로그의 모토는 '의미 찾을 시간에 재미를 즐기는 블로그'입니다. 이제껏 살면서 '그 놈의 의미'를 찾느라 너무 진지하게 살았거든요. 

레몬에이드와 껌딱지



#    레몬에이드 아이스크림 얼음조각들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여름이 오긴 오나보다. 시원한 물만 찾게 되고 밥 먹는 일이 그야말로 일이었다. 지방에 내려가면서 내 방은 동생 방으로 동생 방은 컴퓨터 방이 되어 잠시 머무는 방은 옷방이다. 대각선으로 누워야 잘 수 있다. 어젯 밤 문을 닫고서 그 작은 방에 누워있으니 덥기도 하고 몸도 부대꼈다. 휴대폰 시계를 들여다보면 20분 지나있고, 스르르 잠이 들까 싶으면 다시 잠이 달아났다. 이 별 것 아닌 것의 반복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선풍기를 2단으로 켜놓고 누워있는데 머리칼이 자꾸만 얼굴에 들러붙었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꿈을 너무 많이 꿨다. 앞으로 밥은 먹을 것이고, 으깨진 아이스크림도 남김 없이 먹을 것이다. 휴대폰은 잠시 넣어두고 책장을 넘기고 사람들과 공부를 할 것이다. 선풍기 바람에 신경질 부리지 않을 것이고 옥상에서는 지나가는 지하철, 레고처럼 흩어져있는 주택가들의 야경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    멀쩡하게 걸어가다 신발에 껌딱지가 붙으면 떼어내기가 참 번거롭다. 진뜩함이 느껴지는 그 순간, 늘 느끼는 건 충분하지 못한 조심성에 대한 타박. 조금만 신경써서 걸었으면 피할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휴지를 꺼내 밑창에 들러붙은 껌을 긁어내듯 떼어낸다. 떼어낼 수록 여러갈래로 늘어진 껌은 더 넓게 펴진다. 긁을수록 휴지만 만신창이가 되고 손에도 검은 얼룩이 묻어나고, 더 끈적거리고, 기분이 더 나빠진다. 조심성 있는 줄 알았는데 늘 남모르게 여기저기 부딪히고, 멍들고, 바닥의 껌도 꼭꼭 밟아준다. 그래. 우연이다 우연. 어찌할 수 없는 우연. 이미 들러붙은 껌을 휴지로 긁어낸다고 한들 어차피 걸을 때마다 한 쪽 발바닥에 온 신경이 곤두설 게 뻔하다. 어느정도만 떼어내자. 그리고 길바닥과 한 쪽 신발바닥의 끈적이는 만남에 수차례 기회를 주지. 뭐. 붙었다 떨어졌다 붙었다 떨어졌다. 그것도 내 발걸음. 어느순간 가벼워질테니까.

 

[오마이뉴스]주민소송 첫 승소로 이끈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의 김영수변호사

"한 사람 구제되는 것보다 인식 변화 더 중요해"
[인터뷰] 주민소송 첫 승소로 이끈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김영수 변호사
09.06.27 16:54 ㅣ최종 업데이트 09.06.27 16:54 방연주 (nalava)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딱딱한 분위기의 일반적인 풍경과 달리 활짝 웃는 후원자와 인턴들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어 사람냄새가 물씬 풍겼다.

'사무실 밖 세상 속에서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돕고 제도를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는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의 김영수 변호사(39)를 만났다.

 
  
김영수변호사
ⓒ 방연주
주민소송

지난 5월 20일 서울 도봉·양천·금천구에서 주민 14명이 해당 구청장들을 상대로 낸 주민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이 났다. 기초의원들이 받는 의정활동비 가운데 의원들의 임금인 월정수당인상을 지나치게 많이 올린 것은 위법이라는 판결이다. 

지난해에는 전국 기초의원 의정비가 평균 36%가 인상됐을 정도로 의정비를 올린 자치단체들이 많았다. 이번 판결로 도봉구 의원들은 2136만원씩, 양천구 의원들은 1915만원씩, 금천구 의원들은 2256만원씩 구청에 반납하게 됐다.

이번 결과는 2006년 주민소송제가 도입된 이래 처음 이끌어낸 승소로, 주민감시의 승리를 상징하는 기념비라 할 수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막기 위해…"

주민소송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집행이나 회계 처리가 잘못 됐을 때 주민들이 낭비한 예산을 환수하기 위해 해당 자치단체장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는 제도다. 김 변호사는 '공감'에서 예산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함께하는시민행동'과 함께 의정비 환수를 위한 활동을 지원하다 이번 소송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원래 무보수 명예직이던 지방의회 의원이 유급화 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2007년 9월 지방 의회들이 의정비를 대놓고 올렸습니다. 의정비는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장,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의정비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돼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민 의견 반영이 중요한데 여론조사, 전화자동응답조사(ARS), 지자체 홈페이지를 통한 설문조사에 다른 지역구민이 참여할 수 있게 돼 있는 등 의견수렴방식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설문조항 자체도 보수 인상을 전제로 하거나 인상을 유도하는 식의 내용으로 편향되어 있었습니다."

또 각 지방의회들이 임의로 월정수당 및 여비가 포함된 의정비를 인상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커졌다고 한다.

예를 들면 도봉구의 경우 구의원들이 2007년 의정활동 조례를 임의로 바꿔 의정비를 95%나 올렸다. 지방자치 실현과는 무관하게 의원들이 자시 잇속을 챙기는 것을 보자 주민들이 서명을 받아 감사를 청구했다.

"변호사 역할보다 자발적인 주민의 힘이 더 커…"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정보가 상대측에게 편중돼 있고, 불리한 점을 감추려고 하기 때문에 증거를 찾기가 힘듭니다."

"이번 소송의 경우 돈을 사용한 내역과 관련 회의록이 있었고, 조례 개정 전후의 내용을 비교할 수 있는 문서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풀렸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소송 전에 주민감사청구를 위해 필요한 수백 명의 서명을 받아내느라 1인 시위와 유인물을 배포한 주민들의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주민소송은 승소하더라도 인지료, 송달료, 복사비에 대한 보상 외에 특별히 원고에게 이익이 되는 건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환수된 예산의 일부를 원고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하는 것과 차이가 있죠. 국내에서는 변호사 선임료, 교통비 등 대부분의 비용을 사재로 써야 합니다. 앞으로 이런 보상 제도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첫 주민소송에 이긴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너무 좋아하셨고 얼마 전 사무실에 찾아와 백만 원을 후원금으로 주고 가셨습니다."

주민 1명만으로도 감사 청구가 가능한 일본의 경우 지난해 약 700건 정도의 감사청구가 이뤄졌는데 우리나라는 3년 동안 약 10건에 불과했다. 앞으로 주민 감시가 활성화돼 지방재정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앞으로의 관심은 배신자로 낙인찍힌 공익제보자"

김 변호사는 앞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공익법 영역에 대해 '공익제보자'를 꼽았다. 

"공익제보자들은 사회의 부패를 시정하는 의인인데도 배신자로 여겨져 제보 후 자살을 생각한 경우가 90%에 이를 정도입니다. 옳은 일을 하고도 피폐한 처지에 이르는 일이 없도록 도울 생각입니다."

1989년 대학에 들어간 김 변호사는 누구나 자유롭고, 차별 없이 당당할 수 있는 상식적인 세계에 대해 해주고픈 이야기들이 많아 선생님을 꿈꿨다. 교단은 아니지만 사법연수원에서 동기들과 의기투합해 '공감'을 탄생시키며 공익변호사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로 '공감' 창설 5주년을 맞았다. 그간 빈곤과 복지 분야에서 노숙인 인권침해 조사 및 법률상담, 비닐하우스촌 주거지전입신고 소송, 군대 내 의문사를 밝혀내는 일에 앞장 서 왔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차분한 어조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일관된 관심을 보여주는 듯했다. 김 변호사 같은 '키다리 아저씨'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어둡지 않아 보인다.


[오마이뉴스]"조문하러 3시간 뛰어왔습니다"

"조문하러 3시간 뛰어왔습니다"
58년 개띠 마라토너들의 특별한 문상
09.05.27 21:34 ㅣ최종 업데이트 09.05.27 23:56 방연주 (nalava) / 서영지 (syj326syj)
 
  
58년생 개띠 클럽 사람들이 창원에서 김해까지 마라톤으로 조문하러 왔다.
ⓒ 세명저널 서영지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봉하마을 분향소 앞에 마련된 천막에서 제대로 엉덩이도 붙이지 못한 채 허겁지겁 뜨거운 국밥을 먹는 조문객 4명이 눈에 띄었다. '편히 잠드십시오. 저희 가슴에 모셔두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가방에 묶고, 태극무늬 상의와 짧은 검은색 반바지를 입은 중년 남성 4명은 일반 조문객들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사람들은 국밥을 먹다 말고 그들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맞은편에 앉아 힐끔힐끔 쳐다보던 아주머니가 식사를 하다 말고 마침내 큰 소리로 물었다

"아이고 아저씨예. 자전거 타고 오셨습니꺼?"

"아니예. 우리는 창원 시청부터 김해까지 3시간 넘게 뛰어왔습니더."

아주머니가 한 손엔 국밥, 다른 한 손엔 숟가락을 들고 신발은 반쯤 구겨 신은 채 아저씨들 밥상에 합류했다. 사람들의 눈길이 쏠리자 주재열(52)씨는 자신들이 인터넷 카페 '다음'의 "58년생 개띠 마라톤 클럽" 회원들이라고 밝혔다. 차를 타지 않고, 왜 뛰어 오게 됐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편히 오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예.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고, 대통령을 마음 깊이 기리면서 뛰니까 금방 온다 아닙니꺼."

또 다른 일행인 조종수(52)씨도 "오는 길에 노 대통령이 생전 자주 가시던 길을 들려서 왔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비쳤다.

 

 
  
58년 개띠 마라토너들은 하루 100킬로를 뛰어 서울 영결식에도 꼭 참석하겠다고 했다고 결의를 다졌다.
ⓒ 세명저널 방연주
노무현

그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자마자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의 분향소로 향했다. 그 곳에는 생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의 오붓한 모습이 담긴 사진, 십자수로 된 초상화, 조문객들이 빼곡하게 쓴 추모의 글들이 놓여 있었다. 감정이 북받치는 듯, 그들은 하얀 국화꽃을 차마 집어 올리지 못하고 멀리서 묵념을 올렸다.

일행 중 민주당 경선 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적극 지지해왔다는 한형신(52)씨는 "(노대통령) 퇴임 전에 봉하 마을과 봉화사에 다녀온 후, 아들과 함께 다시 와보자고 약속했었는데……"하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오늘부터 하루에 100km씩 뛰어 서울 영결식에도 꼭 갈 생각입니다"

주재열씨와 동료들은 이미 29일까지 단체 휴가를 낸 상태다. 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과 '저희 가슴에 모셔두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슈퍼맨의 망토처럼 목 뒤로 단단히 고쳐 맸다. 어두운 밤길을 밝히는 촛불 사이로 그들은 '노무현 망토'를 휘날리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지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들은 멀리서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말했다.

"힘들어도 가신 분 생각하면 뛸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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